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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공방 미르의 가구이야기
전통가구

[본문스크랩] 전통 목가구(1)

by 백주현[미르] 2007. 7. 9.
전통 가구의 성격

가구라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장롱이다. 곧 장롱이 우리나라 가구를 대표하며 이밖에 응접세트, 화장대, 책상, 책장을 비롯하여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기물들은 모두 가구의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가구에 전통이라는 개념이 붙는다면 전자 제품은 당연히 제외되며 합판으로 만든 양복장이 제작되기 이전의 가구들만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층장 101x35.5cm. 높이 83cm.

머름칸, 쥐벽칸 등 알갱이는 오동나무이며 뼈대는 배나무이나 쇠목과 동자주는

반월모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하여 오동나무의 직선 무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장 몸체를 받치는 마대는 박쥐가 날개를 펴고 나는 형태를 하여 복이 깃들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우리나라는 과거 전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산림 지대였으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은 다양한 기후 조건을 이루어 자생하는 수종만 해도 천여종이 넘었다. 이 가운데 목재로 활용할수 있는 것은 백여종이며 재질이 치밀하고 무늬가 아름다우며 구하기 쉬운 수십종이 가구재로서 이용되어 왔다. 이와 같은 산림이 풍부한 자연 여건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목재 가공 기술이 발달하였다.

특히 목재에 대한 특성을 잘 파악하여 목재의 종류에 따라 가구의 골재와 판재, 화장재 등으로 구분해서 나무를 켰으며, 알맞는 부위에 적용시키는 적재적소주의를 지켰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우수한 가구 가운데에는 같은 재목으로 하나의 가구를 제작한 예는 거의 없었다. 희귀한 무늬의 나무를 얇게 켜서 화장재로 쓴 경우는 있지만 눈속임으로 무늬목을 대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사용할수록 윤이 나며 나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부드러움 때문에 친밀감이 들게 된다.

사방탁자 46x41cm. 높이 141cm.

하단에 서랍과 장이 부착된 4층 사방탁자이다.

먹감 나무의 무늬를 대칭되게 배치하여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었다.

가구의 양식은 장소와 실내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전통 가옥은 신분에 따른 가사 규제법에 의해 크기와 높이가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비교적 크다고 하는 방의 규모가 8자x16자의 2칸 방으로 높이는 7자반 정도에 불과하였다.

우리나라 주택의 특징인 온돌은 인조(1623~1649)때 전국적으로 퍼져 정착되었다. 따라서 가구들은 방의 규격에 맞춰 높이와 폭 등이 결정되었고 양식도 평좌 생활에 맞도록 설계되었다. 일부 사대부 계층에서는 온돌이 보급된 이후에도 기거용으로 탑, 평상, 의자, 고족안 등의 입식 가구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높이가 높고 큰 가구는 궁중용이나 사찰의 가구들이며 일반 사가에서 쓰는 가구들 가운데 높이가 높은 장이나 사방탁자의 경우에도 170센티미터를 넘는 예가 없다.

반닫이 96x47cm. 높이 56.5cm.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반닫이는 다목적 가구이므로 안방에서 광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하였다.
내면에 3개의 서랍이 있으며 여성용 가구에 주로 장식되는
호리병 경첩이 달린 것으로 안방용임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 주택의 실내는 여름에는 습기가 많으며 겨울에는 온돌 난방으로 인해 따뜻하고 건조하다. 나무는 습기가 많으면 팽창하고 따뜻하고 건조하면 수축되는 특성이 있다.따라서 나무의 수축 팽창으로 인한 가구의 손상에 대비하여 못이나 접착제를 쓰지 않고 울거미(뼈대, 골조)에 알갱이를 끼우는 특수한 결구법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가구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의복을 들수 있다. 한복은 평면재단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태여 옷걸이에 걸어둘 필요가 없이 개켜두거나 횃대 또는 의걸이장에 접어 걸쳐 두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양복을 넣는 옷장처럼 높이가 높고 폭이 넓은 가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좁고 낮은 방문을 통과할수 있고 이동하기에 쉽도록 길이와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가구 양식이 형성되는 데 무리가 없었다.

현존하는 목가구를 사용했던 계층은 대체로 중상류 이상이었다. 서민 주택에서는 실제로 가구다운 가구를 사용하지 못하였다. 서민들은 싸리나 대로 엮은 고리 또는 농에 옷을 넣어 방안에 맨 시렁 위에 얹어 사용하였으며, 형편이 조금 나은 가정에서는 나무로 만든 반닫이 한 구를 윗목에 놓고 지내는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