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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가 사는 이야기/좋은글, 찡한글

천마리 학의 전설..

by 백주현[미르] 2007. 8. 14.

10년 전쯤.. 피시통신 시절에..

친구 녀석이 올린 글을 캡춰 해 뒀던 겁니다.

가슴찡한 글이라.. ^^ 길지만 읽어 볼만 합니다.

[제 목] [파천..] 천 마리 학의 전설!

───────────────────────────────────────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에게는 사랑하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만남을 하고 있었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둘은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리라 생각했고,

영원할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사랑은 튼튼하고 건실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이들에게 크나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인간 능력 밖의 시련이었습니다.

소녀의 그 해맑은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입니다.

소년은 처음 한동안 그럴리가 없다며 현실을 마냥 부정했습니다.

소녀 역시 믿을 수 없다면서 소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만 조용히 흔들었습니다.

신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을 한 죄로

신이 질투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사랑을 한 죄로

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선물을

받아들여야만 한 것입니다.

소년은 소녀를 등에 업고 하얀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능력한 인간의 땅에서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너무 늦어서...

온몸에 종양이 뿌리 내려서...

살아날 가망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설령 살아난다 하도라도

오히려 죽음만도 못할 것이라고... ...

그러나 소년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소녀 곁에서 단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단 한시도 소년를 위한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소녀 곁에서 잠시나마 떨어지는 경우는

소녀가 너무 아파,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소년을 병실 밖으로 쫓아낼 때 뿐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럴 때마다 아무말 없이 병실에서 나옵니다.

그리곤 병원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눈물 대신 하늘만 한동안 쳐다 봅니다.

눈물을 흘리면 신에게 지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신을 원망하면 기도의 효험도 약해지지나 않을까 염려돼

그저 표정없는 얼굴로 하늘만 묵묵히 응시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이 병원 옥상으로 올라오는 횟수는

점차 늘어만 갔습니다.

마른 하늘에 비가 내립니다.

비는 소년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소녀보다 소년이 더 아파 보입니다.

더 지쳐 보입니다.

이승보다 저승에 더 가까이 가 있는 소녀의 영혼보다

그런 소녀를 지켜 보고 있는 소년의 영혼이 더

안타까워 보입니다.

사경을 해매이던 소녀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귀를 조심스럽게 소녀의 가슴에

갖다 댑니다.

소녀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잠들어 있는 소녀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귀를 갖다 대던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손바닥 크기만한 종이를 꺼내 무엇인가를

열심히 접기 시작합니다.

종이학이었습니다.

아니 종이학을 접는것이 아니라

희망을 접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소년이 종이학을 처음 접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자기 위안 때문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생과 사를 넘나드는 소녀를 지켜 봐야

하는 자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덜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소년은 어떤 확신을 하나

갖게 되었습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천 마리 학의 완성되면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년의 손놀림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바늘끝만한 희망에

소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건 것입니다.

소년의 첫번째 소망은

백 마리의 종이학이 완성될 때까지 만이라도 소녀가

살아주는 것입니다.

소년의 두 번 소망은

이백 마리의 종이학이 완성될 때까지 만이라도 소녀가

살아주는 것입니다.

소년의 세번째 소망은... ..............................

소년의 일곱 번째 소망까지는 손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홉 번째 소망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위험한 고비가 여러번 찾아 왔습니다.

소녀는 몇 차례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헤매였고

소년 역시 호흡이 많이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얼굴은 온통 푸른 빛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옛날 맑고 평화롭던 눈동자엔

거미줄 같은 실핏줄이 촘촘하게 뒤엉켜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얼핏 하면 소녀보다 소년이 더 힘겨워 보입니다.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소년은 졸음을 쫓기 위해 자신의 살점을

바늘로 수도 없이 찔렀습니다.

이마를 화장실 벽에다 찧어 댔습니다.

구백구십구 마리의 학이 만들어졌을 때 소녀는 아주 깊은 잠에빠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흥분된 가슴을 겨우 쓸어 내린 후

고운 색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마지막 천 번째 학을 접기 위해서 입니다.

여지껏 보다 몇 곱절의 정성을 더 들여,

몇 곱절 크게 종이학을 접습니다.

천 번째 학이 완성되자

소년은 천 번째 학을 대장학이라 명명합니다.

이제 대장학은 구백구십구 마리의 학을 이끌고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일부는 저승사자로부터 소녀의 영혼을 지킬

전사들입니다.

일부는 소녀가 애타게 기다리는

첫눈을 이땅으로 이끌고 올 용사들이며

나머지 일부는 신에게 소년의 간절한

부탁을 전해 줄 전령사입니다.

천 마리의 학들이 맡은임무를 충실히 수행만 해준다면

소녀는 예전처럼 밝게 웃으며 기적적으로 소생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최소한 소녀의 마지막 소망, 첫눈이 내릴 때까지는

생명이 연장될지도 모릅니다.

소년은 서둘러 천 마리 종이학에게 일일이 생명을 불어 넣어 줍니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하늘로 날려 보내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젠 천 마리 학을 움직일 바람만 불어 주면 됩니다.

종이학들이 혼자 힘으로 하늘 끝까지 날아 오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바람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소년은 병실 밖으로 고개를 쭈욱 내밀어 봅니다.

약간의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종이학을 하늘 끝까지

날려 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괜시리 잘못 날려 보냈다가는 종이학이 날개를 펴기도

전에 모두 땅위로 추락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소년은 초조한 눈빛으로

소녀의 얼굴을 흘깃 쳐다 보았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소녀의 얼굴에서는 땀이 물씬 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울먹이며 소녀가 누워 있는 곳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리곤 늘 그랬던 것처럼 소녀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귀를 갖다 댔습니다.

좀 거칠고 불규칙적이기는 했지만 소녀의 가슴에서는

콩딱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소녀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땀방울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땀방울을 닦아내기도 전에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버립니다.

예전에 느꼈던 그 뜨거움 대신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기가

엄습해왔기 때문입니다.

심장만 뛰고 있을 뿐 소녀의 몸은 이미 매몰차게 굳어 있었습니다.

시릴 정도로 냉랭하게 얼어 붙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녀의 이름을 목청껏

불렀습니다

귀머거리가 아닌데도 소녀는 못들은 척합니다.

제발 말 좀 하라며 몸을 거세게 흔듭니다.

그러나 소녀는 나무토막처럼 뛰뚱거리기만 할 뿐

벙어리도 아닌데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합니다.

눈을 떠 보라며 사슴처럼 가녀린 목을 치켜 듭니다.

그러나 소녀는 목각인형처럼 대롱거리기만 할 뿐

장님도 아닌데 눈을 뜨지 못합니다.

소년은 소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끝내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보를 터뜨립니다.


-휘이잉-

이때였습니다.

바람소리가 들리느나 싶더니 커튼 자락이

요란하게 춤을 춥니다.

소년은 무덤 같은 눈동자를 크게 치켜 떴습니다.

그리곤 천 마리 학을 묶어 놓은 창 쪽으로 성급히 뛰어 갑니다.

학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다시 길게 뽑아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하늘에는 눈꽃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천 마리 학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자 천 마리 학들은 묶어 놓았던 실들을

풀고 모두 하늘로 날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힘을 내!

제발 조금만 더... ...'

종이학의 꼬리를 보면서 소년은 자신의 두 손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그리곤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모아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 갔습니다.

움켜쥔 소년의 손바닥은 뼈마디가 바스라질듯 조여

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세상이 온통 암흑천지로 뒤덮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창쪽에서 -후두둑- 하고 요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소년은 불안스럽게 눈을 뜨며 창쪽으로 달려 갔습니다.

한 무더기의 학들이 어진 유리 조각처럼 바닥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첫눈을 이땅으로 몰고 오기 위해 날아갔던

용사의 학들이었습니다.

아마도 눈의 나라에 갔다가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지상으로 추락한 모양입니다.

소년은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또 다시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한무더기

쏟아져 내렸습니다.

저승사자로부터 소녀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날아 갔던 전사의 학이었습니다.

일부는 목이 참혹하게 부러져 있었고

일부는 숯처럼 새까맣게 타 있었습니다

소년의 절망은 차라리 슬픔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소년의 간절한 소망을 안고 신에게 날아간

대장학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믿고 있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가장 튼튼하고 견실하게 만든 대장학만은 다른 학처럼

쉽게 추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

대장학의 모습이 보인 건 소녀의 몸 안에 있는 영혼이

육체 밖으로 거의 다 빠져 나왔을 였습니다.

소년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왈칵 고입니다.

감사와 고마움의 눈물이었습니다.

소년의 두 눈에는 눈물 한 줄기가 길게 흘러 내립니다.

기쁨과 반가움의 눈물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소년의 눈동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금새 휘둥그래집니다.

소년이 있는 쪽으로 날아오던 대장학은 병실 우리창에

머리를 힘껏 쳐박는가 싶더니 땅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장학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 갔습니다.

대장학의 두 눈은 누군가에 의해 모두 뽑혀져 있었습니다.

발톱은 다 으깨져 있었으며 몸에 있는 털은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뽑혀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소망마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하늘나라는 어찌 이리도 견고하단 말인가.

보이지 않으면서도 어찌 이리도 견고하단 말인가?

신의 나라!

신의 성

신의 영역!

인간의 힘으로는 정녕 함락시킬 수 없단 말인가?

아! 정녕 인간의 능력으로는......'


소녀는 끝내 그렇게 죽어 갔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소녀를 이땅에서 떠나 보냈습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니 이젠 청년이 되어버린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사내의 하루 일과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을 접는 것입니다.

천 마리의 학이 완성되면 사내는 아주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 갑니다.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립니다.

반나절이 걸리든 한나절이 지나든

그는 바람이 일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리곤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오면 생명을 불어 넣은

천 마리의 학을 하늘 높이 날려보냅니다.

사람들은 사내를 보고 미쳤다고 말합니다.

혼이 달아났다고 합니다.

사내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집안에 앉아 묵묵히 학을 접을 뿐입니다.

종이학에게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불어 넣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아니 이젠 백발이 성성해진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온갖 비웃음속에서도 천 마리의 학을

구백구십구 번이나 하늘로 날려 보냈던 노인은

이제 더 이상 학을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까만 눈동자는 바래서 하얗게 퇴색되었고,

머리는 함박눈을 덮어쓰기라도 한 듯 백발이 성성합니다.

눈가엔 주름이 골 깊게 패여져 있었습니다.

천 마리 학을 구백구십구 번이나 하늘로 날려 보냈던

노인은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노인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노인이 살고 있는 집 주변에는 무거운 정적과 고요만이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하늘이 갑자기 환하게 열리면서 수만 마리의

학들이 하늘에서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수놓고 있는 학들은 노인이 그동안 새생명을

불어 넣어 하늘 멀리 날려 보냈던 바로 그

종이학들이었습니다.

노인과 살고 있는 지붕 위로 내려온 학들은 슬피 울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하나의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집 밖으로 나와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저기 좀 봐!'


누군가가 소리질렀습니다.

그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곳은 노인이 살고 있던 집이었습니다.

한 마리 고운 학이 비좁은 창문 틈새로 빠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학은 노인이 살던 집 주위를 몇 번인가 빙빙 돌더니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개짓을 했습니다.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 높이 날아 오르고 있는 학의

눈동자 속에는 한 소녀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때, 하늘 끝에서 아주 고운 한 마리의 학이 날아 옵니다.

학의 모습은 노인의 눈동자 속에 평생토록 담겨져 있던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노인의 집에서 나온 학과 하늘 끝에서 내려온 학은

하늘과 땅의 중간 지점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하늘 높은 곳을 향해 힘차게 나래짓을 했습니다.

이른 가을인데도 하늘에선 눈꽃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첫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