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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공방 미르의 가구이야기
전통가구

반닫이에 대하여

by 백주현[미르] 2007. 5. 24.

반닫이 櫃 Chest Hinged Front Flap

우리의 전통가구는...


오랜 전통을 통한 독특한 미가 있으며, 선조의 지혜와 사랑 속에 쓰였던 물건입니다. 또한 나뭇결의 아름다운 무늬와 쇠목, 동자의 반복구성이 알갱이와 조화를 이루어 상하좌우 대칭의 안정감을 보입니다. 이런 생활 속 고가구를 통해 나무의 긴 수면과 그것을 그대로 연장시켰던 선조들의 지혜와 얼을 느낄 수 있으며, 그 실용성과 아름다움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반닫이는 양반이나 서민할 것 없이 우리의 어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필수적 가구였다. 일부 가구가 양반이나 권력층에서만 사용되는 가구인데 반해 반닫이는 모든 계층에 고루 애용되어 집안에서 널리 사용되어 왔다는 데에 그 특색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속공간이 넓어 많은 양의 물품을 보관하는데 많이 애용되고 있으며, 집안 어디에 놓아도 독특한 멋을 풍기는 가구이다.

● 조선 목가구의 아름다움

우리 전통 가옥은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짐을 으뜸으로 쳤다. 그 속에 있는 가구들에도 역시 자연의 향기가 스며 있어 자연과 집과 사람과 가구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조선시대 목가구는 자연과 같은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우리 마음에 깃들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목가구에서 가장 눈에 먼저 띄는 것이 나뭇결(木理)의 아름다움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나뭇결이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나무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그 나무를 어떻게 켜느냐, 또 켠 나무의 표면을 어떤 대패로 어떤 기술로 미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며, 완성된 목가구 표면을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하여 촉감과 나뭇결을 더 두드러지게도 했다. 게다가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은 목가구를 들여놓은 후 매일 기름걸레로 닦고 문질러 나무 속에 스며 있는 자연의 맛을 음미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기후상 두껍고 넓은 판재가 흔하지 않아, 대개 얇고 작은 판재들로 가구를 제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단순 간결하면서도 재미있는 면분할을 보여 주게 된다. 여기서도 아름다운 나뭇결과 면구성의 조화가 큰 역할을 하는데 오랜 경험과 재주 있는 소목장(小木匠)이 짠 장롱이나 문갑 등을 보면 큰 면을 분할해서 거기 댄 각 소면(小面) 나뭇결의 어우러짐이 참으로 볼 만하다. 이러한 다양한 면분할은 목재의 제한에 기인할 뿐 아니라, 가벼우면서도 큰 온습도 차에서 뒤틀리지 않는 견고한 가구를 제작하기 위한 것으로, 실용과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미적인 장식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다음으로 대소의 각 면 사이에는 좁고 가는 골재와 버팀목인 동자와 쇠목 등이, 돋을 무늬처럼 튀어나옴으로써 질서 있고 뚜렷한 경계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동자와 쇠목의 양끝이 기둥과 쇠목에 머리를 박아 연귀촉과 연귀턱 짜임으로 서로 만나게 되어, 외형의 선의 흔적은 V자형이 되거나 >∧∨< 형과 같은 선을 남겨 전체적인 구성에 또 하나의 변화를 주고 있다.
한편 목가구에서 보이는 각 부위간 적절한 비례와 균형과 조화 또한 눈여겨 봐야 할 점이다. 정면에서 본 가구의 높이와 폭의 비례, 조금 빗겨서 봤을 때의 가구의 높이와 정면폭과 측면폭의 비례, 사방탁자나 장롱 등 키 높은 가구에서의 층 수와 각 층간의 비례가 어떠한지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봐야 한다. 우리 목가구는 이 비례와 균형이 방의 크기와 사람의 크기에 아주 적절하게 맞게 되어 있으며, 너무 키가 크고 폭이 좁은 것도 없고 너무 폭이 크고 키가 작은 것도 없어, 모두가 우리 눈과 마음에 적절한 비례와 균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통 목가구는 대량생산, 기성품이 아닌 소량의 주문형 맞춤가구로서 제작되어 장인의 솜씨와 함께 그 사용자의 독특한 취향이 다양하게 반영된다. 안목이 높은 소목장과 사용자가 있을수록 목가구의 품격과 아름다움이 드높아지게 된다.

반닫이 櫃 Chest Hinged Front Flap

장방형으로 짜서 물건을 넣어두는 커다란 가구를 궤(櫃)라 하는데, 궤 가운데를 여닫을 수 있게 만든 가구를 반닫이라고 합니다. 문의 위치 형태에 따라 앞판의 반쪽을 문처럼 여닫는 형태는 '앞닫이'로, 윗판을 여닫는 형태는 '윗닫이'로 나눠 부르기도 한다. 반닫이는 대부분의 민가에서 두루 사용되었고, 안방에서부터 광에 이르기까지 가장 요긴하게 사용된 다목적가구였습니다. 사용된 나무의 재질이나 금속장식, 기본 형태와 짜임 등에서 지역적인 특성이 강하게 보이면서 다양하게 발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두껍고 넓은 판재를 손깍지 끼는 듯한 모양의 사개물림 등으로 튼튼하게 짜며, 또한 각 모서리나 연결부위에 감잡이와 경첩 등으로 한층 견고하게 보강하는 등 견실함 위주의 가구라는 것은 공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반닫이는 무늬결이 좋은 넓고 두꺼운 판재에, 무쇠로 된 큼직한 장식들이 어울려 단순 후박한 멋을 주는 건강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반닫이는 실용성이 강조된 가구로 사용된 금석장식의 위치에서도 이런 점이 엿보인다. 받닫이 아랫부분에 만자(卍字)를 투각한 장석이 보이는데, 이것은 무심코 문판을 열었을 때에 문판이 아래로 열리면서 나무판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착한 것이다. 의류는 물론이고 귀중한 두루마기 문서·책·유기류·제기류 등을 넣기도 하였고, 서민들은 반닫이 위에 침구를 올려놓기도 하는 등 다목적으로 사용하였다. 흥부전』 에 "원앙금침 잣벼개를 받닫이에 올려놓고"라는 구절이 있듯이 받닫이의 천판은 요나 이불 따위를 올려놓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반닫이는 일상적 양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를 보이기도 하고, 다른 가구에서 반닫이의 모양을 차용하기도 한다.

● 구조와 금구장식에 있어서 독특하다.

옛날 안방 가구 중에서 반닫이만큼 요긴한 것이 또 있을까. 반닫이는 궤짝의 윗 부분을 여닫으며 사용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상도에서는 방심하고 열면 여닫이 널판이 떨어지는 소리가 벼락치는 것같이 요란하다하여 '벼락닫이' 라고 부르기도 했다.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반닫이는 안방 머리맡에 놓여져 누구보다 여인네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혼인은 인륜지대사인데 이때 반닫이는 가장 중요한 혼수품목의 하나였다. 옛 여인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이 귀한 증표로 여겼다. 지게 위에 반닫이를 세우고 혼수치레를 얹은 채 능마루를 돌아가던 그 행렬이야말로 소담한 풍경이 아니었던가. 친정어머니가 지은 옷, 시집올 때 가져온 옷 중 가장 솜씨가 좋은 것은 반닫이 제일 밑에 고이 모셔두는데 이것을 농지기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한번도 입어보지 않다가 죽을 때 입고 가기도 하는 것이 농지기다. 요즘도 팔구십된 할머니들은 반닫이에서 장농으로, 자개장으로 옮겨가면서 보관하기도 한다. 물론 농지기만 담아두었던 것만 아니다. 서류, 문서, 책, 그릇, 제기 등을 넣기도 했지만 조금씩 달랐다.! 양반들이 주로 족보 같은 귀중한 것을 넣어두는 궤를 귀하게 여겼다면, 반반한 농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서민들은 반닫이에 자긍심을 가졌다.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든 집에서는 버들가지나 싸리나무 등으로 함처럼 만든 후 종이를 바른 상자로 대신하거나 송판으로 대충 만들어 쓰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이 반닫이 위에는 이부자리를 개켜서 얹어놓기도 하고, 완상품이나 자질구레한 물품을 올려놓기도 했다.

반닫이의 일반적 구조는, 두껍고 폭이 넓은 널빤지로 튼튼하게 짜며 판재끼리 사개물림을 하고 감잡이와 경첩등의 쇠장석을 달아 한층 견고하게 보강한다. 앞면의 위쪽을 열도록 한 기본형 외에 반닫이 위에 일반적인 장이 붙어있는 반닫이장(혹은 장반닫이), 양단이 위로 들어올려진 두루마리식 천판이 달린 것, 중앙부에 개구멍처럼 작은 문이 있는 개구녕반닫이, 위에 서탁이나 내부에 서랍을 더해서 꾸며진 것 등 다양한 변화를 보인다. 소목장이 만든 반닫이는 무늬가 좋고 귀한 것을 앞판에, 그 외에 면에는 소나무를 사용하여 나무를 아꼈다. 연장이 별로 없는 산간지역과 섬지방에서는 자귀로 나무를 다듬어 판재 표면에 자국이 보인다. 소목장이 아닐지라도 장석을 별도로 구입하여 집에서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옆과 뒤는 오동나무를, 앞은 송판으로 만든 반닫이가 많이 나왔다. 이런 반닫이는 별다른 장석이 없고 자물쇠만 달려 있어 지극히 단순하다. 그 당시에는 일제의 심한 수탈로 좋은 목가구가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때이다. 그러다가 생활이 나아지게 되자, 백통장식을 배열해 ! 박은 튼튼한 반닫이가 나오게 되었다. 나무는 소나무가 많은데, 나무의 질이 적당하여 다루기가 좋고 터지는 일이 다른 나무보다 덜해서 민가에서 많이 이용되었다. 이밖에도 느티나무,엄나무,가래나무,참죽나무 같은 단단한 목재를 사용하거나 먹감나무,물푸레나무,단풍나무 등 무늬결이 있는 나무로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흔히들 느티나무를 괴목(槐木)이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회화나무를 가리키며, 느티나무는 규목(槻木)이다.

반닫이에는 독특한 금속장식이 부착되어 있어 듬직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무쇠, 주석, 백동 장식이 주로 사용되었다. 무쇠장식은 힘을 많이 받는 반닫이에 크고 두껍게 사용되었고, 주석장식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구리,주석,백동,시우쇠를 합금하여 만든다. 단정한 멋을 내는 백동장식은 나무질보다 금속장식에 치우치던 20세기초의 가구에 함께 성행하던 것이다.

장석에는 종류가 많다. 문을 여닫도록 가구 몸체와 문판을 이어주는데 사용하는 경첩, 들어 옮기거나 당기는 들쇠, 접합 부분이나 모서리를 잡아주는 감잡이, 귀장식, 못자국을 감추어주며 미감! 을 더해주는 광두정, 짜임새와 이음새를 견고히 해주는 거멀장식, 자물쇠 앞바탕, 고리 등이 있다. 경첩은 주로 반닫이에 달았는데 다양한 형태와 문양에 장식의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어 여간 흥미롭지 않다. 동그레, 약과, 제비초리, 호리병형, 절자형, 호패형 등이 사용되었다. 금구장식은 대체로 초기에는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여 단순,검뱍하였으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복잡,화려해지고 있다.

반닫이는 어느 하나라도 똑같은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칫수나 구성의 비례, 나무의 쓰임새, 장식, 새김질 따위 모든 요소에서 저마다 다르게 만들어져 있다. 어떤 것은 투박하고 증후한 풍으로 되고, 어떤 것은 늘씬하고 경?나 맛을 풍긴다. 또 구성은 극히 단순하게, 극히 복잡하게도 꾸며지고 칠이나 새김질에 있어서도 각양각색으로 변한다. 쇠장식에 있어서도 재료으 다름과 형상의 차이 등 극히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다. 장식 쇠붙이에 있어서는 그 위치에 따라 모양과 이름이 다르거니와 같은 모양의 장식이라도 재료면에서 또는 형상의 세부에서 모두 차이가 있으니, 그 변화도 무궁무진할 만하다.

● 지역적 특징

반닫이는 수요가 많았고, 또한 각 지역마다 제작되었기 때문에 저마다 개성적인 특징이 있다.

산지별로 서울, 경기지방에는 강화, 개성, 경기, 서울 반받이가 있고, 각 도별로는 충청도, 경상도반닫이, 평안반닫이(박천반닫이), 전라반닫이, 제주반닫이 등의 고유명사가 붙여져 있다.


박천반닫이는 평안도 일대, 특히 박천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는데 규모가 크고 구멍을 숭숭 뚫은 장식금구를 많이 사용하여 앞면을 가득 채운 것이 특징이며, 주로 피나무를 재료로 썼다. 장석을 많이 썼기에 썼기에 숭숭이 반닫이로 불린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경기도 양식의 숭숭이경기도반닫이도 눈에 띈다.


강화반닫이는 반닫이 중 가장 섬세하고 치밀하며 옛부터 궁궐에서 사용하는 등 가장 고급품으로 인식되었다. 나무판을 이은 각 부분에 화려한 무쇠장식을 붙여 기능과 장식성을 동시에 살렸다. 소나무가 주재료이며 폭에 비해 높이가 높다. 무쇠와 놋쇠가 장석 재료로 많이 쓰이며 약과형 경첩 속에 아(亞)자와, 만(卍)자를 투각한 것이 많고, 감잡이 장식도 화려하다. 중심부에는 호리병모양의 경첩을 달았고, 문판 중심에 걸리는 직선형 뻗침대가 특징이다. 궁궐용으로 제작된것이라 남아 있는 수가 많지 않아서 인지도가 높다.


수량이 많이 제작되었기로는 전라도 반닫이가 단연 앞선다. 곡창지대인 호남평야가 있는데다 부호들이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미관에 치중해서 박실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특히 나주반닫이는 미적 조형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장석의 사용을 최대한 줄인 충청도반닫이, 소나무와 두꺼운 무쇠장식, 순박한 짜임새가 한데 어울린 강원반닫이, 마치 함지박을 파내듯 자귀로 쪼아낸 것 같은 제주도반닫! 이가 있다.
경상도 반닫이인 밀양반닫이는 크기가 작으며 장식이 많지 않고 목재의 문양을 그대로 살려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 높이에 비해 좌우의 폭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양반문화를 이끌어온 안동지방의 반닫이는 특히 장식이 간결하다. 거창반닫이는 담박한 몸체에 호족 모양의 받침다리가 부착되어 있다.

반닫이 속에는 음식이나 쌀을 넣어 두었는데 들짐승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상주반닫이는 앞판이 안으로 들어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지방마다 특색있게 제작되어 북쪽지역의 반닫이는 남쪽보다 높이가 높고, 서쪽지역은 금구장식이 화려하며 많이 부착되어 있다. 반면 남쪽지방의 반닫이는 규모도 작고 소박하다.

요즘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옛것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무리한 힘이나 잔재주가 깃들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우리 목가구에 매료된 이들이 많다. 고미술품 가게에서 비싸게 팔리는 것이 이 목가구들이다. 우리 옛 가구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를 다듬어서 정성들여 만들었기에 뒤틀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관리가 허술하여 뒤틀리거나 파손된 경우가 많다. 우리 옛 가구는 겨울에 바닥은 따뜻하고 위는 서늘한 전통온돌가옥의 구조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

● 문양

또 반닫이는 그 문양도 다양하다. 조각이나 상감기법, 그림, 경첩의 모양 등에 따라 원앙, 화초, 가재, 오리, 봉황, 나비, 송학, 버선, 왕관등 다르게 구분되어 불리어 진다.
복" 을 상징하는 박쥐---이것이 주로 다섯마리로 문양에 등장하는데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께서 잘 말씀하시던 바로 "오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박쥐를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해석하는데는 박쥐의 한자어 편복의 박쥐복자를 복복(福)자로 해석하는데서 기인한다.
봉황무늬---상상의 새로 천황의 상징이기도 하며,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아 치란(治亂)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알고 어진 임금이 보위에 올라 천하가 태평해 지면 그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여 봉황이 나타나면 일이 모두 잘되고 모든 사람에게 길복이 온다고 믿었다. 봉황은 四靈獸(용, 봉황, 기린, 거북) 가운데 하나로 사신(四神 :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의 남방을 수호하는 주작도 봉황의 하나로 보고 있다. 꼬리의 형태는 후대에 물고기형에서 공작형으로 변화되었으며, 봉황문은 현대 생활의 각 부분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아름답고, 대표적인 문양으로 남아 의지와 선비의 도를 뜻하기도 한다.
학무늬---십장생의 하나로 조류 가운데 가장 장수하며 선비의 품위와 학식을 나타내며 각종 공예의 도안으로 자주 쓰여진 문양이며,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무늬이다.
원앙무늬---화목한 부부의 애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부부금술을 염원하며 썼던 문양으로 화평과 안정의 의미로 모든 기물에 이용되었다.
나비문양---나비는 기쁨의 상징이고, 여름을 상징하며 부부금술이 좋음을 상징하여 이불깃이나 보자기, 혼례의상, 대례복 문양으로 다양하게 쓰여졌으며 여성용품이나 안방의 병풍그림, 가구 등에 흔히 장식되고 도자기에 그려졌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무늬 하나에도 깊은 의미를 새겼고 아름다운 철학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문양들을 늘 생활의 주변에 놓아둠으로써 정신적인 믿음을 얻었고 그 믿음은 행동으로 닮아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닫이
참으로 허름한 물건이다.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는 물건이다. 손잡이는 이미 떨어져 나간 지 오래고, 장식물 또한 동강난 것, 아예 떨어져 버린 것, 녹슨 것, 모두가 하나같이 볼품없다. 그래도 앞면은 반들반들 윤기가 남아 고풍스러운 데가 있다지만 옆면이나 뒷면은 아예 신문지를 붙여둔 게 너덜너덜 볼썽 사납다. 효용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반닫이는 그저 어머니의 애환이 서린 물건이거니 생각했으나 그것만은 또 아닌 것 같다. 반닫이는 구순 노모의 주머니요 바구니요 금궤 구실을 하는 소중한 보물이다.
반닫이 속엔 어머니의 삶이 들어 있다.
반닫이 속엔 어머니의 사랑이 들어 있다.
반닫이 속엔 어머니의 소망이 들어 있다.
반닫이는 내 어머니들이 아끼시는 소중한 물건이다. 어찌 보면 이제 수명이 다 된 듯한 고물이요, 고물상에 내다 주어도 선뜻 받아줄 것 같지 않은 물건이다. 안방에도 새로운 물건들이 한둘 찾아 들어와 고가구들을 하나둘 밀어냈다. 그런 와중에도 반닫이만은 여전히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생각하면 애화도 많고 사연도 많은 반닫이다. 기껏해야 송판으로 만든 허름한 물건이지만 결코 하찮은 물건이 아니다.

자료출처 무등조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