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목공방 미르의 가구이야기
미르의 가구이야기/책과 도면 그리고 테크닉

의자의 재발견, 푸대접 받던 의자 가구의 ‘꽃’이 되다

by 백주현[미르] 2007. 7. 6.
[zoom in] 의자의 재발견, 푸대접 받던 의자 가구의 ‘꽃’이 되다

한국에서도 의자 디자인이 소비자의 주목을 끌고 있다. 침대나 옷장 가격을 넘나들 만큼 비싼 수백만원대 의자가 팔리는가 하면, 세계적인 유명 디자이너가 제작한 의자를 모방한 모델이 곳곳에서 팔린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립 스탁 의자’ ‘바우하우스 스타일 의자’ 같은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필립스탁은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고, 바우하우스는 유명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해낸 유럽의 디자인스쿨이다.)


과거 의자는 사람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구였다. 하지만 오늘날 의자는 의자 그 이상이다. 앉을 수 있는 가구가 아니라 전시품, 소품 같은 존재가 됐다는 말이다. 집안 거실이, 회사 사무실이, 야외 카페가 ‘의자의 변신’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다.
그냥 앉으면 됐던 의자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 멋있고 폼나게 앉을 수 있는, 또 소장하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의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의자가, 그 사람의 입맛과 정체성까지 표현하게끔 하는 ‘의자 브랜드’ ‘의자 트렌드’ 시대인 것이다.


국내에서 특히 의자를 가장 깊이 있게 연구하고 제대로 만드는 곳은 바로 사무가구 브랜드이다. 퍼시스, 코아스웰(구 한국OA), 듀오백 등이다. 특히 퍼시스는 한국 사무가구의 개척자로서 1986년 ‘유로테크’라는 시스템 가구를 처음으로 출시한 이후 사무가구와 사무의자 분야의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이들은 세계적 디자이너와 함께 인체공학적인 의자를 개발해 출시하기도 했다. 의자만을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는 없지만, 가구 디자이너로서 퍼시스의 창립 멤버인 양영원씨는 1997년 가구디자인 전문회사 크레아디자인을 설립한 이래 국내 시스템 사무가구와 의자 디자인의 혁신을 주도해왔다.





현재 국내 의자 시장의 규모는 4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가구 브랜드 리바트의 홍보담당 이종현 차장은 “국내 주요 브랜드 회사들이 올리는 연간 의자 매출액이 총 1300억여원 선”이라며 “전체 가구 시장 중 주요 브랜드 제품의 점유율이 30~40%인 점을 감안할 때, 전체 의자 시장규모는 4000억원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가구 브랜드들이 연간 생산하는 의자는 100만개 선. 이렇게 따져볼 때, 한해 국내에서 제작되는 의자는 300만~400만개로 볼 수 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의자 디자인’ ‘의자 산업’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의 의자는 디자이너의 작가주의를 표출하는 조형적인 대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중적인 수요에 상응하는 정도였다.
물론 이유는 있다. 한국의 가구 산업은 옷장과 침대, 주방가구, 사무가구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혼수품, 아파트의 대량수요(주방가구), 사무실의 수요에 따라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가구의 꽃은 역시 의자다. 의자는 부피가 작고 개인적인 물건이며 기능성보다 조형성을 구입 기준으로 삼는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가장 까다롭게 선택하는 품목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구 구매의 중요한 선택 기준은 가격과 튼튼함이다. 따라서 독창성이나 멋 따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독창성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브랜드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이탈리아의 카르텔이나 독일의 비트라처럼 독특한 형태의 의자, 유명 디자이너의 자유로운 조형을 실험하는 의자에 대한 수요가 없어서 이 분야는 발전이 전혀 없었다. 사실 이런 의자에 대한 욕구는 돈이 있어야만 생기는 건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주로 고전적인 형태의 앤틱 가구와 의자를 더 선호했지, 20세기의 모던한 의자에 대해서는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한국도 의자 산업에 눈을 뜨다


명품 가구의 가장 큰 소비자층은 디자인의 가치를 잘 아는 디자이너들이다. 때문에 현재 서울 강남의 디자인 사무실에 가보면 명품 의자들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의자가 그토록 가치있다는 개념은 조금 낯설다.

이유인즉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개인의 소비는 아직도 문화적 소비로까지 진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비는 일차적으로 생존을 위해 이뤄지고, 돈을 더 벌면 자신의 재산과 성공을 과시하는 쪽으로 비중이 커진다. 그리고 더 많은 재산이 쌓이면 예술과 문화를 즐기고 자기만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는 데 가장 많은 소비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 두 번째 단계에 있는 것이다.
의자는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사는 물건이라기보다 마지막 단계의 소비 품목이다. 따라서 의자산업의 발전도 늦고, 명품 의자에 대한 소비도 늦게 일어난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흔하디 흔한 의자가 예술품도 아닌데, 문화적인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1970년대만 해도 부를 과시하려면 금반지, 진주목걸이 같은 보석과 액세서리류를 샀다. 자동차는 어떤 브랜드를 막론하고,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의 과시였다. 그러다 1980년대에 이르러 옷과 패션에 눈뜨게 된다. TV에서 광고하는 브랜드의 로고나 심벌이 박힌 옷을 걸치면 자랑스러워진다. 1980년대 초에 분 나이키 열풍은 한국의 대중도 브랜드에 눈뜨기 시작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토대를 발판으로 1990년대 명품 붐이 일어난다. 옷에서부터 가방, 신발, 시계, 자동차 부문에 이르기까지 해외의 값비싼 명품들에 대한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자, 이들 품목을 눈여겨보자. 거기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들에게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품목이란 점이다. 내 몸에 걸치거나 가지고 다니는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남들 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즉 자랑하기 쉽다.





같은 옷이라도 청바지와 팬티는 노출 빈도가 현저하게 다르다. 당연히 눈에 띄지 않아 과시하기 힘든 팬티에 대한 브랜드 인식이 청바지보다 늦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구처럼 집안에 있는 물건은 부자가 되어도 옷이나 가방, 자동차만큼 자랑할 수 있는 빈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에 굳이 비싼 명품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집안에 손님을 초대하지 않는 이상 가구를 어떻게 자랑하겠는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의자는 가구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낮은 품목이다. 의자는 식탁이나 책장에 딸린 부속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 의자를 수입하는 게 패션 제품 수입보다 재미를 보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카르텔, 카펠리니, 에드라, 마지스, 비트라 같은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낯선 브랜드의 의자가 하나에 수백만원을 하는데, 이걸 몇 사람이나 사겠는가?





의자는 기능적 산물이 아닌 문화적 산물


하지만 서구에서는 팔리니까 그런 비싼 의자를 생산했을 것이다. 그 의자들은 식탁이나 책상의 부속물이 아닌 단독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왜 서구에서는 의자가 그토록 각광 받는 품목인지를 보면 의자가 생겨난 역사를 알 수 있다.

원래 의자는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가구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의자는 권력과 동일한 것이었다. 의자는 ‘앉는다’는 기능적 목적에 앞서 권력자를 표시하는 상징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권력을 가진 자 말고는 의자에 앉을 꿈도 꾸지 못했다.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의자는 귀했고 대단한 사치품이었다. 중세가 되어서도 사정은 바뀌지 않았다. 의자는 주로 귀족 집안에 있었는데, 대개 하나였고 그 집안의 가장만이 앉을 수 있었다. 당시 의자는 지금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붙박이장처럼 고정된 것이었고 대단히 크고 권위적이었다. 밥을 먹을 때 사람들은 대개 걸상에 앉았다.


의자를 뜻하는 단어들에는 의자가 권력의 상징이었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있다. 왕권, 왕위를 뜻하는 영어 ‘throne’은 원래 왕이 앉는 장식적인 의자를 뜻한다. 회의의 우두머리인 의장을 뜻하는 ‘chairman’은 말 그대로 ‘의자사람’이다. 한자에서도 권력을 쥔 사람을 ‘권좌(權座)’에 올랐다고 표현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가시방석에 앉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앉는다’는 행위와 의자는 그 기능보다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로서 자주 사용된다. 앉는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옛날 머리가 아니라 주로 노동으로 벌어먹고 살던 시대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집안에 의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다. 이 시기의 의자는 귀족들을 위한 것으로 장식적이고 사치스러웠다. 귀족들은 자신의 신분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의자를 사들였다. 의자가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보급된 것은 산업화가 보편화된 19세기 후반부터다.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의자의 가격이 낮아진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노동의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사무직 근로자처럼 머리를 써서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서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앉아서 일하는 노동자가 훨씬 많아졌다. 때문에 장식이 없고 값이 싼 의자들이 공급되었고 의자는 사회의 대량 수요를 충족시키는 기능적인 의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왜 의자는 남다른 물건인가


기능적인 의자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지만 권력과 신분, 부의 상징이라는 의자의 문화적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의 사무실 환경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의자의 형태와 높이만 보면 그 의자의 주인이 사무실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의자는 머리받침, 등받이, 엉덩이받침, 팔걸이, 다리로 구성된다.


이런 구성은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의자는 다른 어떤 물건보다 주인의 인격과 동일시되며, 주인 이 외에는 함부로 앉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20세기의 많은 거장 건축가들이 의자를 디자인했다.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알바 알토 등. 왜 건축가인 그들은 많은 가구들 중 의자를 굳이 디자인했을까.


그들은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의자에 압축시켜놓았다. 수납장이나 침대와 달리 사람을 닮은 의자야말로 건축가의 철학과 이상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다. 20세기 초반부터 건축가들은 저마다의 의자를 디자인했는데, 이것들이 오늘날 명품으로 인식되는 의자다. 이 의자들은 지금까지도 여러 가구 회사에서 생산되며,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에게도 의자는 조형적 표현의 수단이며, 자신의 예술관과 작가적 이상을 표출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의자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어떤 물건보다도 소유욕을 불러일으키고 개인적인 애착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서구에선 진짜 의자보다도 수십 배 비싼 장식용 미니어처 의자가 팔리고 있지 않은가. 의자가 때론 값비싼 오디오나 전자제품, 명품 옷이나 자동차보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예술 표현의 수단으로서의 의자, 조형적인 의자에 대한 반발로서 매우 기능적이고 인체공학적인 의자가 개발되었다. 대표적인 의자가 빌 스텀프와 돈 채드윅이 디자인한 에어론(Aeron) 의자다. 앉아 보면 정말 몸이 편하다는 걸 느낀다.

의자는 결국 기능보다 권력과 신분, 재산의 상징 또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물리적인 기능보다는 상징적인 기능이 더 중요한 구매의 기준이 될 것이란 말이다. 이런 상징과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창조해낼 수 있는 사람은 기술자가 아닌 디자이너다. 한국에서도 소득과 문화 수준이 향상되면서 패션이나 자동차처럼 명품 의자 또한 각광받을 것이다. 우리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명품 의자’도 태어나길 기대해본다. ▒


/ 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