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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의 가구이야기/책과 도면 그리고 테크닉

건축가가 가구를 만드는 이유 -황두진님-

by 백주현[미르] 2007. 7. 6.
건축가들이 가구 디자인을 한다? 이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다른 동네를 기웃거리는 한가한 ‘외출’로 비춰질 것이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담장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가벼운 ‘나들이’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에게 이것은 자기 집 마당에서 벌이는 심각한 ‘본업’ 그 자체다.
대체적인 역사의 흐름은 이렇다. 한 때 세상은 어떤 통합적인 디자인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집중했다. 소위 말하는 ‘종합예술’이 바로 그것이다. 종합예술이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이것을 개념화해서 용어로 정리한 사람은 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다. 그는 음악만을 강조하고 드라마를 경시하는 당시의 오페라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에서 이러한 개념을 만들었고 이를 ‘Gesamtkunstwerk'라고 불렀다. 영어의 ’total art'는 여기에 대한 번역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오페라 대신 악극(Musikdrama)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음악, 연극, 무용, 문학 등 예술 전반을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공연장의 개념 또한 달라서 낮게 가라앉은 분위기, 객석의 특이한 배치, 블랜딩이 많이 일어나는 음향상의 고려 등 기존의 오페라 하우스와는 구별되는 것이었고 바이로이트에 세워진 축전극장은 그의 이러한 생각이 건축으로 구현된 결과였다.
우연이었을까, 바그너의 조국인 독일을 중심으로 조형예술에 있어서의 종합예술이 추구되었던 것은. 바우하우스는 건축을 중심으로 각종 디자인과 공예, 회화, 조각, 공연예술 간의 조화와 통합을 추구했던 대표적인 시도였다.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겸 가구디자이너들이 바우하우스에서 가르쳤고 ‘gesamtkunstwerk’은 현대의 예술가, 디자이너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단어의 하나가 되었다. 건축가는 이런 상황에서 매우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왜냐하면 여타의 디자인들은 결국 건축 공간 속에 포용되게 마련이어서 건축가가 마음만 먹으면 건축에서 시작하여 가구, 심지어 문손잡이까지 모두 디자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이용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경우 바르셀로나(Barcelona) 의자, 브루노(Brno) 의자로도 불리는 투겐하트(Tugenhadt) 의자 등을 발표하여 그의 건축 작업과 가구 디자인을 대응시켰고, 이렇게 건축과 가구 디자인 사이에서 물샐틈없는 견고한 의미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건축가들만이 누릴 수 있는 독점적인 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바우하우스 출신은 아니지만, 유럽 본토의 기능주의 건축의 영향을 받았던 핀란드의 알바 알토(Alvar Aalto)가 자신이 설계한 파이미오(Paimio)의 결핵요양원에서 사용한 의자를 건물과 같은 이름으로 지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건축가의 가구 디자인은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건축가들의 경제적인 삶은 프로젝트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아무리 설계비를 많이 받아도 좋은 작업을 위한 투자로 그 이상 소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별히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하지 않는 경우 이렇다할 고정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 가구 디자인은 판매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추가적인 노력 없이 어느 정도의 로열티 수입을 예상할 수 있어 재정적으로 좋은 밸런스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아주 몇몇 사람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이기는 하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경우는 건축과는 별도로 가구 디자인이 비교적 믿을만한 수입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알바 알토는 아예 아르텍(Artek)이라는 가구 회사를 차려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오늘 날의 전반적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전에는 건축가들이 종종 가구 디자인도 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오히려 디자이너들이 종종 건축을 한다고나 할까. 디자인 분야간의 상호 교차 활동은 이미 흔한 일이 되었다. 예를 들어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은 디자이너지만 그의 작업은 작은 생활용품에서 시작, 가구와 인테리어를 지나 건축까지 거슬러 오르고 있다. 렘 콜하스(Rem Koolhaas) 같은 건축가는 프라다(Prada)의 매장을 설계하더니 아예 프라다 패션 전시회의 기획을 맡기도 한다. 지금은 시대의 감성에만 맞는다면 누가 무엇을 하던지 적어도 창작이라는 의미에서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분야를 초월하는 일종의 디자인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비전문적 행동이지만 그 영역 간의 분화라는 것 자체가 근대화의 소산이라고 보면, 오히려 이는 지나친 세분화와 전문화의 오류를 극복하려는 과정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대학의 학제가 과별 모집을 지양하고 학부제로 전환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종합예술에 대한 생각도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 이 시대는 한 사람에 의한 일관성 있고 조화로운 디자인 환경 보다는 서로 다른 것들이 섞여서 만들어내는 다소 절충적인 감성에 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건축에서도 한 대지 안에 서로 개성이 다른 여러 명의 건축가들이 작업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이제 ‘기능적 편리함’이나 ‘효율적 일관성’, ‘미학적 통일감’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마치 온 세상이 이런 것 정도는 초월하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것은 미학적으로는 디자인이라는 것이 단순한 기능성을 벗어나 감성과 감각의 세계로 향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기본적인 기능이 무시 되어도 좋을 정도로 ‘잉여’가 축적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잉여’로 인해 삶에 있어서 편리함과 경제성 이외의 다른 부분들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처럼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각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전반적 변화가 1970-80년대에 본격화되었다고 생각하며, 1976년에 작고한 알바 알토야 말로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종합예술을 실천했던 마지막 거장이 아닌가 한다.
이런 시각에서 이번 쇳대박물관의 ‘건축가의 가구’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건축가의 한 사람으로서 우선 이런 기회가 생긴 것에 대해서 반갑게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구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건축 작업을 통해 이를 부분적으로 실천하고는 있었으나, 독자적인 가구 디자인 및 제작에 대한 기회는 없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산업 인프라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가구를 제외하고는 도면상의 작업만으로 설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만들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다. 특히 금속의 경우 건축을 통해 익숙해진 물성과 가구를 통해 체감되는 물성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의자 위에 똑바로만 앉아 있지 않고 가구는 종종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게 되고 결국 이를 직접 다뤄온 사람들이 경험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쇳대박물관에서 제작비용과 제작인력을 지원하였고, 나의 경우 재료와 관련해서는 별도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았다. 물론 시장을 전제로 한 ‘디자인 상품’의 개발에 비하면 매우 압축된 과정이었으나, 적어도 개념과 감성, 그리고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 소프트한 의미에서의 ‘작품’을 만들 수는 있었다고 본다.
또 다른 의의는 실험의 가능성이다. 건축가에게 가구 디자인은 재료에 대한 생각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크롬 도금의 강철 튜브를 이용한 의자의 디자인은 네덜란드의 건축가인 마크 스탐(Mark Stam)이 처음 한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알려져 있으나, 이를 훨씬 더 강렬하게 대중의 인식 속에 각인시킨 것은 마르셀 브로이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건축에서 같은 주제들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스는 ‘강철과 유리’라는 신재료를 가지고 서양의 고전건축에 못지않은 품위 있는 현대건축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었다. 그에게 가구 디자인은 작은 스케일로 이러한 생각들을 실험하고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찰스 임즈의 경우 건축과 가구의 관계는 더욱 흥미롭다. 임즈는 2차 대전 당시 압축곡면합판(bent plywood)으로 부상당한 병사의 부목을 만드는 연구를 했고 전후에 이를 가구 디자인에 접목시켰다. 그의 건축 작업은 기성재를 잘 조합하여 만드는 방식(‘off-the-shelf’ method)으로 유명한데 철과 유리, 목재 등 다양한 재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빌바오 구겐하임으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는 고전적인 목재 라미네이션(lamination) 기술을 극단으로 몰고 가서 마치 나무가 흘러내리는 듯한 일련의 의자를 디자인했는데, 재료는 다르지만 조형의 성격은 그의 건축 작업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의외로 실용성도 있어서 수집가용(collector's item)이 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어느 정도 대중의 사랑도 받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우리에게 이런 관점으로 다룰 수 있는 건축가는 별로 없는 듯 하다. 서구와는 분명히 다른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경우, 다른 디자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지원을 기대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건축 분야 자체의 정체성도 취약한 마당에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건축가들이 여전히 건축을 넘어선 분야에 대한 시도를 해 왔으나 그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예를 들어 건축가 김수근 선생도 의자를 디자인한 것이 있어 전시회에 등장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생산된 것도 아니고 그 동안 별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이번 쇳대박물관에서의 전시는 어떤 생각의 시발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작품을 제출한 각 건축가들의 생각이 가구 디자인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추적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것이 몇 십 년 정도 늦은 이 전시회를 그만큼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결국 우리는 이제 새로 시작하는 셈이다.